계절이 바뀌면 가장 먼저 달라지는 건 공기의 냄새예요. 그리고 그 공기를 마주하는 아이들의 시선도 조금씩 바뀌죠.
아이 곁에 있다 보면, 그 작은 변화를 놓치기 어려워요. 매일 똑같은 놀이라기보다, 자연스럽게 계절에 어울리는 놀이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계절은 그 자체로 놀잇감보다 훨씬 풍성한 ‘자연 교구’예요.
봄엔 바람을, 여름엔 물을, 가을엔 낙엽을 가지고 노는 일.
저는 어린이집 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사계절을 따라 움직이며 아이와 함께 놀이를 만들어 왔어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조금 나눠보려 합니다.
🌱 봄놀이 – 시작을 닮은 순간들
봄은 ‘시작’의 계절이에요.
새싹이 돋고, 바람이 달라지고, 새들이 노래하죠. 이 시기 아이들은 작은 변화도 크게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봄이 되면 아이와 함께 '관찰'을 놀이의 출발점으로 삼아요.
예를 들면, 아파트 화단에 피기 시작한 꽃망울을 매일 사진으로 찍어 기록하기.
놀이터에서 개미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
아이들은 이런 놀이 속에서 자연과 연결되는 감각을 키워요.
어린이집에서는 ‘꽃에게 편지 쓰기’ 놀이도 해요.
“꽃한테 편지 써볼래?”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어제보다 키가 더 컸네!”, “향기가 좋아요” 같은 말들을 꺼내놓습니다.
그 편지를 모아 교실 벽에 붙이면, 아이들은 자신이 봄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아요.
작년 봄엔 마을 축제에서 ‘꽃물 들이기’를 했어요.
벚꽃잎을 모아 하얀 천에 물들이는 활동이었죠.
천 위에 퍼지는 자연의 색을 보며 아이들은 눈을 반짝였고, 그 자체가 마법 같았어요.
산책도, 편지 쓰기도, 그저 멍하니 하늘 보기조차도 봄에는 모두 놀이가 됩니다.
👉 이 계절엔 아이에게 “이건 뭐야?”라고 묻기보다는
“우리도 해볼까?”라고 말해보세요.
봄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다가옵니다.
☀️ 여름놀이 – 뜨거운 계절의 차가운 즐거움
여름은 몸으로 부딪히며 노는 계절이에요.
덥고 지치지만, 그만큼 감각이 가장 예민하게 살아나는 시기죠.
그래서 여름 놀이의 핵심은 ‘시원함’과 ‘촉감’입니다.
대표적인 건 얼음 놀이예요.
작은 장난감을 얼음 안에 넣어두고, 아이가 손으로 천천히 녹이며 찾아가는 놀이.
처음엔 시렵다고 망설이다가도, 어느 순간 아이는 얼음의 감촉을 탐색하며 몰입해요.
그 손끝에서 아이는 세상을 느끼고 있어요.
작년 여름, 우리 마을에서는 ‘마당 워터파크’를 열었어요.
물총 하나, 물풍선 하나씩 준비해 와서 함께 놀았죠.
할머니들이 지나가다 “옛날엔 수도물로 목욕했지~”라며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 풍경.
그날은 놀이뿐만 아니라 세대가 만나는 자리가 되었어요.
실내에서도 여름 놀이는 충분히 가능해요.
부엌에서 얼린 젤리로 오감 놀이를 하거나, 수박씨로 미니 볼링 게임을 만들어 보기도 하죠.
여름 놀이란 단지 재미있는 것을 넘어서, 아이의 감각과 감정을 해방시켜주는 시간이에요.
👉 여름은 아이에게 말해주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 너답게 자유로워도 괜찮아.”
그러니 오늘만큼은 잔소리 대신, 함께 뛰어보세요.
🍁 가을놀이 – 기억을 담는 계절
가을은 자연이 색을 입는 계절이죠.
놀이도 조금씩 사색을 닮아갑니다.
낙엽을 주워 엽서를 만들고, 도토리로 악기를 만들고, 흩날리는 잎을 따라 뛰는 놀이.
그 속에서 아이의 말도 달라져요.
“엄마, 나무가 졸려하는 것 같아.”
작년 가을엔 지역 커뮤니티와 함께 ‘자연물 공예 수업’을 했어요.
솔방울을 색칠하고, 나뭇가지로 가족 인형을 만들었죠.
어떤 아이는 자신이 만든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이건 우리 할아버지예요. 바람 많이 막아주는 분이니까요.”
그 인형은 아직도 그 아이 책상 위에 있다고 해요.
놀이가 기억이 되는 순간, 정말 아름답죠.
가을은 이야기의 계절이기도 해요.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우리 가족은 매년 ‘가을일기’를 써요.
하루 한 줄, 낙엽 하나 붙이고, 짧은 문장 하나 적기.
그렇게 쌓인 가을의 조각들이, 아이의 마음 안에서 오래오래 남습니다.
👉 가을은 느림의 계절이에요.
그 느림 속에서 피어나는 대화와 놀이를, 함께 누려보세요.
🍀 사계절, 아이와 함께 살아낸다는 것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는 거창할 필요가 없어요.
준비물이 없어도, 특별한 장소가 없어도 괜찮아요.
계절을 따라 느끼고, 함께 살아내는 과정 자체가 바로 놀이니까요.
봄엔 시작을, 여름엔 감각을, 가을엔 기억을.
계절마다 아이는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자라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사람.
그건 바로 우리, 아이 곁에 있는 어른들이에요.
지금 이 계절이 무엇이든, 아이의 눈으로 그 계절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함께 걸어가 주세요.
그 길 위의 시간들이 아이에겐 평생을 지켜줄 힘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