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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즐기는 놀이 (자연, 전통, 창의)

by 몽실뭉실 2025. 7. 21.

시골에서 즐기는 놀이 (자연, 전통, 창의)관련 사진

저는 도시에서 태어났고, 도시에서 자랐습니다.
결혼도 안 했고, 제 아이도 없어요.
하지만 매일 아침 20명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살아가는 ‘어린이집 교사’로서,
시골이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주는 놀이라는 이름의 자유를 마주할 때면,
종종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극이 아니라, 여백일지도 몰라.”

도시 속 아이들은 계획된 공간에서 자라지만,
시골은 계획되지 않은 우연이 아이의 놀이가 되는 곳이죠.
이번 글에서는 제가 직접 경험하거나,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느낀
자연과 전통, 그리고 창의가 살아 숨 쉬는 시골 놀이의 진짜 가치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자연: 흙먼지 속에서 아이는 자신을 만난다

도시 아이들이 흙을 보면 손부터 움찔합니다.
“더러워요.”, “손 씻어야 해요.”
반응은 다 비슷해요.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골 어린이집으로 단기 지원을 갔던 어느 여름,
비 온 다음날 진흙물 속에 서서 웃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날의 놀이는 단순했어요.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 진흙을 만들고, 손으로 조물조물 빚어 흙도너츠를 만들고,
비닐 호스를 연결해 작은 계곡을 만들었죠.
‘놀이터’라는 단어조차 필요 없었어요.
그 땅 자체가 놀이터였고, 그 손자국마다 배움이 묻어 있었으니까요.

시골은 자연이 ‘상황극’이 됩니다.
매미소리 따라 걷다 보면 생태수업이 되고,
파란 나뭇잎 하나가 그림 교재가 되죠.
제가 도시 어린이집에 있을 땐 일부러 공원에 나가야 했던 것들이
여기선 그저 창문 열면 펼쳐진 ‘수업의 배경’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은 아이를 조급하게 만들지 않아요.
돌을 쌓고, 물을 흘리고, 바람을 느끼는 그 순간,
아이는 느려도 괜찮다는 걸 스스로 배우고 있더라고요.


전통: 사라지지 않고 되살아나는 것들

한 번은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이 애들은 줄넘기를 할 줄 모르네. 고무줄은 해봤어?” 하고 놀라시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웃으며, “그걸 배울 기회가 없었죠.”라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날부터 ‘전통놀이 주간’을 만들었어요.
고무줄놀이, 비석치기, 땅따먹기, 공기놀이, 고깔잡기까지.
모든 놀이가 ‘장난감 없는 놀이’였지만, 아이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어요.

전통놀이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규칙을 만들고, 지키고, 깨트리는 과정을 공유하는 놀이예요.
아이들은 ‘지기 싫어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배우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기죠.

또 재미있는 건, 이 놀이들이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는 거예요.
충청도 고무줄놀이는 노랫말이 다르고,
전라도의 딱지치기는 접는 방식이 달라요.
지역 사회가 축적해온 놀이의 결은 그 자체로 아이들에게 ‘문화’를 심어주고 있었습니다.

저처럼 아이 없이도 아이 곁에 있는 사람들은 잘 압니다.
그들에게 전해지는 놀이는 곧 정체성이거든요.


창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되는 상상

시골 놀이는 준비물보다 마음의 여유와 관찰력이 더 중요해요.
왜냐면, 진짜 재밌는 놀이는
‘이거 가지고 뭐하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니까요.

예전에 교사 워크숍으로 갔던 농촌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고추대, 마른 풀, 바가지, 신문지만으로
하루 종일 놀이를 이어가는 모습을 봤어요.
누구는 풀을 엮어 동굴을 만들고,
누구는 고추대를 들고 ‘마법지팡이’ 놀이를 했죠.

그곳에는 매뉴얼도, 완성도도 없었지만
아이들의 창의성이 맨발로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는 마른 잡초로 만든 모자를 쓰고 이렇게 말했어요.
“선생님, 이건 내 상상 모자예요. 이거 쓰면 생각이 많아져요.”
그 말에 웃으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찡했어요.

도시는 안전하지만, 정답이 너무 많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요.
시골은 반대로 실패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넘어져도, 어지럽혀도, 결과가 엉망이어도 괜찮은 곳.
그 여백이 결국 아이를 진짜 상상하게 만드는 토양이 되더라고요.


시골에서의 놀이는 특별한 재료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와 자연, 그리고 한 사람의 어른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도시에서 교사로 일하며 아이의 마음을 읽는 데 집중했다면,
시골에서는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진짜 자기 모습으로 놀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자녀가 없지만, 매일매일 아이들과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 안에서 배운 건 단 하나입니다.

놀이의 본질은 '복잡한 것'이 아니라, '비워주는 것'에 있다.
여백이 생길 때 아이는 상상하고,
상상할 수 있을 때 아이는 자랍니다.

혹시 당신이 지금 ‘무엇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면,
가끔은 아무것도 주지 말고,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그때 비로소, 아이의 놀이가 진짜 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