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 놀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언어발달이 중요하다는데, 말놀이를 더 많이 해야 하나요? 아니면 손으로 만지고 느끼는 감각놀이가 더 중요한가요?”
어린이집 교사로서 여러 아이들을 만나며, 저 역시 이 질문에 대해 깊이 고민해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됩니다. 이건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요.
정말 중요한 건 아이의 발달 시기, 현재 상황, 그리고 무엇에 반응하고 있는지를 잘 관찰하는 일입니다.
이 글에서는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감각놀이와 언어놀이의 차이, 각각의 효과, 그리고 시기별 접근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또한,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공동 육아 활동 속에서 어떤 놀이가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를 이끌어냈는지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감각놀이: 세상을 손끝으로 배우는 시간
감각놀이는 특히 말이 서툰 유아들에게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한 아이는 언어 표현이 느렸지만, 다양한 재료를 손으로 만지고 탐색할 때면 누구보다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언어를 억지로 끌어내는 것보다, 감각을 열어주는 게 먼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활용하는 감각놀이는 다양합니다.
물감, 밀가루, 모래, 얼음, 젤리, 커피가루, 오트밀 등 집이나 교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것은 재료의 화려함이 아니라, 아이가 실제로 느끼는 자극입니다.
아이가 손끝으로 만지며 “미끌미끌해요”, “차가워요”, “어? 녹았어요!” 하고 말하는 그 순간, 이미 언어가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단지 단어의 표현이 아니라, 감각 자극을 언어로 연결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촉감 박스’ 활동을 자주 활용합니다.
아이들이 눈을 감고 만져보며 “이건 말랑말랑해요”, “이건 딱딱해요”라고 표현하는 모습 속에는 탐색, 비교, 언어의 조합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경험이며, 그 경험이 언어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또한, 지역 육아모임에서는 계절마다 자연물을 활용한 감각놀이를 진행합니다.
봄에는 꽃잎, 여름에는 얼음, 가을에는 낙엽 등을 만지고 냄새 맡고, 촉감북을 만들며 아이들은 자연과 연결되고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갑니다.
이런 활동들을 지켜보며 늘 느끼는 건, 말보다 감각이 먼저 움직이고, 감각이 열릴 때 언어도 그 뒤를 따라온다는 점입니다.
언어놀이: 말로 이어지는 관계의 시작
언어놀이는 특히 만 2세 이후, 어휘가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에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말에 자신감을 얻기 시작하고, 그 말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도 함께 커집니다.
어린이집에서는 ‘하루 말놀이’, ‘그림책 역할극’, ‘이야기 이어말하기’ 같은 활동을 자주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곰이 산책을 나갔어요. 그다음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처럼 문장을 이어가면, 아이들은 자신만의 상상과 언어로 이야기를 구성합니다.
이때 나오는 말은 정제된 단어보다도 ‘아이만의 말’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지역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이야기 놀이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도 있습니다.
처음엔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아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대화에 참여하고, 질문도 던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언어놀이는 ‘말을 배우는 놀이’ 그 이상이라는 걸 느낍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언어놀이의 본질입니다.
시기별 접근: 감각과 언어는 어떻게 이어질까?
감각놀이와 언어놀이는 각각의 시기에 따라 그 효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보통 생후 6개월부터 24개월까지는 감각 중심의 놀이가 효과적이고, 이후에는 언어놀이가 더 활발히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선후관계가 아니라 겹치고 이어지는 흐름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의 반응을 읽는 것입니다.
감각이 예민한 아이도 있고, 언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말이 조금 느리더라도 손으로 잘 놀고 있다면, 그 감각적 자극을 통해 언어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반대로 말이 유창해 보여도, 감각 자극이 부족하면 정서 표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가을에 낙엽을 모아 촉감책을 만드는 활동은 감각놀이입니다.
하지만 “이건 무슨 색일까?”, “이 낙엽은 어디서 왔을까?”라는 질문을 함께 던지면, 그 순간 언어놀이로 전환됩니다.
놀이 하나가 감각과 언어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공동 육아 모임에서는 ‘이야기+감각 통합놀이’를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한 적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찰흙으로 눈사람을 만들고, 이름을 지어주며 짧은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활동입니다.
이처럼 손으로 만들고, 입으로 말하며, 아이들은 놀이 안에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감각도 언어도, 결국은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감각놀이는 아이가 세상을 몸으로 배우는 과정이고,
언어놀이는 그 배운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도구입니다.
놀이란, 결국 아이가 세상과 관계를 맺고, 자기 안의 감정을 표현하는 매개입니다.
감각이 깨어나면 말이 열리고, 말이 열리면 관계가 깊어집니다.
아이마다 반응은 다르지만, 그 반응 안에 놀이의 방향이 숨어 있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아이의 눈빛, 몸짓, 말 한마디가 방향을 알려줍니다.
그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 그게 교사의 시작이자 아이와 함께 자라는 길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