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를 키워본 적은 없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퇴근 후엔 나 혼자 조용히 라면을 끓여 먹는다.
하지만 매일 아침, 문을 열고 교실에 들어설 때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아이와 하루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된다.
‘놀이’는 내 하루의 중심이다.
놀이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아이들이 계절을 느끼고 세상을 이해하며
감정을 배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집에서 월별 테마놀이를 기획하는 일은,
단순한 행사 기획이 아닌 ‘아이의 삶을 짜는 구조물’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의 하루를 계절과 엮고, 지역의 변화를 담고,
무엇보다 **“우리 동네 아이들답게 크는 것”**을 중심에 둔다.
이 글은, 바로 그 테마놀이 구성의 실제 이야기다.
계절과 호흡하는 놀이: 주제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
우리는 한 해를 계절로 기억한다.
봄이면 봄비와 개나리가 떠오르고, 여름이면 물놀이와 매미소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계절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절 속에서 함께 노는 것’**이다.
나는 테마놀이 주제를 정할 때 꼭 세 가지를 기준 삼는다.
- 계절이 주는 자연의 리듬
- 예: 3월엔 ‘새싹’, 6월엔 ‘비’, 10월엔 ‘단풍’
- 지역 사회에서 벌어지는 실제 변화
- 예: 벚꽃 축제 주간엔 ‘꽃길 걷기’, 김장철엔 ‘채소 손질하기’
- 아이의 정서 흐름
- 예: 입학 초 긴장감을 풀어주는 ‘나무 친구 만들기’,
연말엔 감사 표현 놀이 ‘편지 쓰기’
- 예: 입학 초 긴장감을 풀어주는 ‘나무 친구 만들기’,
이 세 가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
놀이는 그저 신나는 시간을 넘어, 아이들의 감정과 계절이 조화를 이루는 경험이 된다.
그리고 이런 놀이는 부모와의 연계 교육으로도 확장된다.
아이들이 집에 가서 “오늘 우리가 만든 벚꽃 부채 보여줄까?” 하는 말 한마디가
가정과 교실을 잇는 따뜻한 연결고리가 된다.
월별 테마 예시와 활동 아이디어: 현장에서 살아 움직인 놀이들
1월: ‘눈과 얼음’ / 겨울 오감놀이
- 종이컵에 물을 얼려 작은 얼음 탐험
- 새하얀 면봉으로 눈사람 꾸미기
- 벽에 붙인 은박지 위에 하얀 솜으로 눈 내리기 표현
2월: ‘따뜻한 손’ / 사랑 나누기
- 손도장으로 하트 카드 만들기
- 친구의 이름 불러주고 안아주기
- 할머니께 편지 쓰기 프로젝트
3월: ‘새싹이 자라요’ / 자연 관찰 시작
- 유리컵에 콩 심어 싹 틔우기
- 창밖 보며 봄 찾기 산책
- 새싹 초록 색감 물감으로 물기 퍼뜨리기 놀이
6월: ‘비가 와요’ / 감각 놀이 테마
- 파란색 색종이 찢어 비 내리기
- 우비와 장화 착용하고 인조비 체험
- ‘비 소리’에 맞춰 리본 흔들기 무용놀이
8월: ‘여름 캠프’ / 물과 바람을 활용한 놀이
- 선풍기 바람에 리본 날리기
- 작은 풀장 속 물총 놀이
- 부채 만들기 후 단체 퍼레이드
10월: ‘가을 나들이’ / 탐색과 추억 만들기
- 낙엽 스케치북에 문지르기
- ‘우리 동네’ 길 따라 나뭇잎 수집
- 감 물들기, 단풍 퍼즐 조각 만들기
12월: ‘반짝반짝 겨울밤’ / 정서 중심 활동
- 전구 조명 끈으로 빛 탐색
- 고요한 캐롤 음악 속 별자리 꾸미기
- 선생님과 1:1 연말 인터뷰 놀이 → 나를 표현하는 카드 만들기
이런 활동들은 단순히 재미있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계절의 온도를 느끼고,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나는 교사로서, 그 과정의 기록자이자 동행자다.
지역사회 속 놀이 확장법: 놀이는 교실 밖으로 퍼질 수 있다
우리 반에는 한 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말은 서툴지만, 놀이는 누구보다 먼저 시작하는 아이다.
벚꽃이 흐드러진 4월 어느 날, 나는 그 아이와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동네 작은 공원에서 꽃잎을 하나하나 주워 함께 ‘봄 앨범’을 만들었다.
그 활동을 계기로 학부모 몇 분이 자발적으로 ‘놀이 산책 동아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분기에 한 번, 아이들과 동네 탐방을 함께 하고 있다.
놀이는 교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역사회 안에서 더 풍부하고, 더 살아 숨 쉬게 된다.
작은 전통시장, 도서관, 공원, 마을 어르신과의 만남.
이 모두가 ‘우리 아이들만의 월별 테마’가 될 수 있다.
놀이 계획은 커리큘럼이 아니라 ‘감정의 지형도’를 그리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놀이 계획안을 쓴다.
하지만 그 종이는 단지 주제와 활동안을 적는 곳이 아니다.
거기에는 아이들의 감정, 계절의 변화, 그리고 내 마음이 함께 적힌다.
교사라는 역할은 하루하루 쌓여가는 작은 감정의 층을 읽는 일이다.
놀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주고,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는 일.
자녀가 없어도 괜찮다.
나는 이미, 수십 명의 아이와 사계절을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계절마다 아이들이 남긴 놀이라는 기록은,
교사인 나에게도 가장 깊고 따뜻한 성장의 증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