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막대기로 땅만 긁어도 하루가 갔는데,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 없인 심심하대.”
어느 날 동네 작은 공원 벤치에서 한 할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시던 게 떠오른다.
놀이는 시대가 변해도 본질은 같다. 누군가와 함께 웃고, 서로의 마음에 머무는 일.
이 글은, 조부모와 손주가 함께 보낸 시간이 단순한 돌봄이 아닌, 관계와 감정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감성적이면서도 무리가 없고, 간단하면서도 따뜻한 놀이법을 제안하는 실천 안내서다.
우리는 놀이를 통해 세대를 잇고, 놀이를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에 온기를 더할 수 있다.
특히 지역 사회 속에서 조부모의 역할은 단순한 육아 보조자가 아니라, 놀이의 공동 창작자이자 세대 통합의 연결자가 된다.
세대 통합의 시작: 놀이로 이어지는 마음의 길
손주는 자주 보지만,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는 여전히 낯설다.
처음에는 ‘TV 틀어주고 과자나 챙겨주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손주가 “할머니, 할아버지는 핸드폰만 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마음이 쿡 하고 아팠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받았던 정을 손주에게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놀이가 거창하지 않았다. 돌멩이로 제기차기를 하고, 냄비 뚜껑으로 드럼도 쳤다.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마음이더라.
그때부터 나는 손주와 매주 ‘놀이의 날’을 정했다. 토요일 오전, 간단한 놀이 하나.
종이접기, 노래 부르기, 동네 꽃잎 모으기, 김밥 만들기 놀이.
우린 놀 때마다 더 많이 웃고, 더 자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놀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의 문이 열렸다.
지역 아파트 경로당에서는 매달 ‘할머니 놀이단’을 운영하고 있다.
10명의 할머니가 번갈아가며 손주들에게 옛날 놀이를 가르치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른과의 관계를 배우며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낀다.
놀이는 단지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다.
세대를 잇고, 마음을 전하고, 관계를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감성 중심 놀이: 기억에 남는 따뜻한 순간 만들기
우리는 흔히 놀이는 에너지가 넘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감정을 나누는 놀이야말로 아이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다.
손주와 함께한 놀이 중 가장 따뜻했던 건 **‘편지 놀이’**였다.
나는 “할머니가 손주에게 하고 싶은 말”을 편지로 써주었고, 손주는 그림으로 답장을 했다.
내용은 짧았다.
- “너는 웃을 때 눈이 사라져서 예뻐”
- “다음에도 엄마 몰래 초콜릿 줄게”
- “할머니가 옆에 있어서 좋아”
그 편지는 아직도 냉장고에 붙어 있다.
다정한 말 한마디를 글이나 그림으로 남기는 놀이,
손잡고 공원을 걸으며 나뭇잎 모으기,
과일 껍질로 얼굴 만들어보기,
예전 사진 앨범 보며 이야기 나누기,
이 모든 것들이 아이의 정서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조부모에게는 자신이 여전히 의미 있는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순간이 된다.
이 감성 중심 놀이는 특히 대면 시간이 짧은 주말 방문 손주와의 관계 형성에도 효과적이다.
지역 내 작은 도서관에서는 매달 ‘세대공감 그림책 읽기 프로그램’을 열고 있다.
조부모와 손주가 짝을 이뤄 책을 읽고, 그 내용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듣고 자라는 목소리에 ‘할머니의 톤’이 더해진다는 건,
감정적 지층을 더 풍성하게 만든다.
간단하고 무리 없는 놀이: 체력은 덜 들고, 웃음은 오래 간다
조부모에게 놀이란, 감정적 의지는 있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현실적 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숨차지 않지만 웃음나는 놀이’를 찾는다.
① 종이컵 쌓기 놀이
식탁 위에 종이컵을 쌓고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게임.
순서 정해서 하나씩 쌓기, 시간 제한 두고 누가 더 높이 쌓나 겨루기.
아이와의 협력 + 경쟁 놀이가 동시에 된다.
② 과일 이름 가위바위보
“딸기” 외치며 가위바위보, “바나나” 외치면 안 되는 조건을 넣은 반응 놀이.
인지력과 집중력을 동시에 끌어낸다.
③ 스카프 댄스
부드러운 천을 하나 들고 음악에 맞춰 손만 움직이며 춤추기.
의외로 아이들이 집중하고, 어르신들도 지치지 않는다.
④ 손바닥 도장 그리기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 찍고, 거기에 눈·입을 그려 사람 만들기.
아이들은 창의력, 어른은 감성 회상 모두 경험한다.
이런 놀이들은 간단하고 준비물이 거의 없으며, 무엇보다 놀이의 주도권이 조부모에게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놀이가 어렵지 않다는 걸 경험하면, 조부모도 ‘나는 여전히 손주와 잘 지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우리 마을 복지회관에서는 ‘3대 가족 놀이마당’을 기획 중이다.
부모, 조부모, 아이가 함께 참여하는 동네 마당축제로,
단순한 놀이지만 가족이 함께 웃는 장면이 마을 전체의 따뜻한 기억이 된다.
놀이란, 세대가 서로에게 남기는 ‘기억의 온도’다
조부모와 손주의 놀이는 단순한 육아의 연장이 아니다.
그건 한 사람의 과거와 다른 한 사람의 미래가 마주보며 웃는 일이다.
놀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순간, 우리는 단지 시간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세대 차이를 줄이는 건 기술이 아니라 관심이고,
사랑을 주고받는 방식은 언어보다 놀이가 더 먼저 가닿는다.
오늘, 손주의 손을 한 번 더 꼭 잡고 이야기해보자.
“우리, 뭐하고 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