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시작하면 제일 먼저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 있어요. “도대체 아이랑 뭘 하고 놀아야 하지?” 저는 첫째 아이를 안고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 막막함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해요. 책에선 하루 10분 놀이면 된다고 하고, 주변에선 잘 놀아주면 아이가 잘 큰다고 하지만, 막상 눈을 마주치고 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죠.
그때부터 저는 놀이를 ‘잘하는 것’보다 ‘함께 익숙해지는 것’으로 바라보기로 했어요. 이번 글에서는 초보 부모님들이 꼭 알아야 할 영유아 놀이의 기본 원리, 발달 시기별 추천 활동, 그리고 제가 실제로 마을 공동육아모임에서 겪은 경험들을 중심으로, 놀이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아이와 연결되는 따뜻한 방법을 안내드릴게요.
영유아 시기: 놀이가 곧 관계다
처음 육아를 시작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건 ‘놀이’라는 단어에 대한 부담감이었어요. 마치 무언가를 잘 해줘야만 아이가 행복할 것 같은 압박. 그런데 제 아이가 6개월 즈음, 바닥에 놓은 천 조각 하나만으로 20분 이상 혼자 놀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저는 크게 깨달았어요.
놀이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아이가 관심을 주는 그 순간에 함께 반응하는 것이구나.
영유아기 아이는 모든 감각이 열리고, 세상과의 첫 연결을 시작하는 시기예요. 이 시기엔 장난감보다 사람의 얼굴, 손짓, 목소리에 더 큰 반응을 보이죠. 저는 그래서 첫째가 갓난아기였을 때, 하루 중 가장 오래 했던 놀이는 바로 **‘얼굴 따라 하기 놀이’**였어요.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밀고, 입을 동그랗게 만들면 아이는 그대로 따라 했죠. 간단하지만 눈빛을 마주치고 웃는 그 순간이야말로 아이에게 가장 강력한 애착 형성의 시간이에요.
동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첫아이 부모 교실’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거기서 들은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놀이란 결과가 아니라 반응이다”라는 말이었어요. 장난감이나 결과물을 만들기보다,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그 반응에 부모가 어떻게 반응해줬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였죠.
이 시기, 놀이에 거창한 기술은 필요 없어요. 아이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같이 바라보고, 그걸 함께 ‘이야기’로 만들어주는 것.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시작이에요.
발달 중심: 시기에 맞게, 부담 없이
아이마다 발달 속도가 다르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막상 내 아이가 또래보다 말이 늦거나 잘 기지 않으면 불안해지죠. 저도 그랬어요. 그래서 ‘발달 중심 놀이’를 시작하게 됐어요. 아이가 지금 어떤 감각과 움직임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고, 거기에 맞춰 놀이를 제안하는 방식이에요.
예를 들어 생후 6개월 이전엔 시각 자극이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흑백 패턴 카드나, 손수건을 흔드는 간단한 놀이를 자주 했어요. 6~12개월엔 움직임과 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하니까, 흔들어 소리 나는 페트병 장난감이나, 양손으로 두드릴 수 있는 드럼통을 만들어줬죠.
특히 생후 12개월 이후부터는 탐색과 모방이 활발해져요. 이 시기엔 놀이가 조금 더 구조화되기 시작하고, 아이는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감각을 키워가기 시작해요.
어린이집에서는 연령별로 놀이발달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그에 맞는 활동을 구성해요. 예를 들어 만 1세 아이에게는 낙엽 만지기, 밀가루로 손바닥 찍기, 공 굴리기 같은 감각 중심 활동을, 만 2세부터는 역할놀이, 블록 조립, 그림책 따라 말하기 같은 사고 확장 놀이로 넘어가요.
저희 마을 공동육아모임에서도 매달 ‘발달 놀이 워크숍’을 열어요. 아이들 각자의 발달 상태를 존중하면서도, 놀이는 함께할 수 있도록 구성하죠. 거기서 배운 가장 중요한 건, 놀이가 발달을 앞서가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 발달을 이끄는 게 놀이가 아니라, 발달을 따라가며 함께 걷는 게 놀이라는 걸요.
추천 놀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여기서 제가 직접 해본, 부담 없이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놀이 몇 가지를 소개할게요. 특별한 장난감 없이, 아이와 관계를 깊게 만들 수 있는 놀이들이에요.
- 숨바꼭질 손놀이 (생후 4개월~)
손수건을 얼굴에 덮고 “엄마 어디 있을까~ 짠!” 하고 보여주기. 단순하지만 아이의 예측 능력과 반응성, 애착을 자극해요. - 부엌 도구 탐험 (생후 8개월~)
국자, 찻숟가락, 작은 볼 등을 모아 바닥에 깔아두고 아이가 만져보고 소리 내도록 유도. 일상의 도구가 최고의 놀잇감이 돼요. - 걷는 그림책 놀이 (생후 14개월~)
그림책 속에 나오는 장면을 따라 집 안을 걷거나 뛰며 흉내 내기. “곰이 걷는다 쿵쿵!” 하며 함께 몸을 움직이면 금방 몰입해요. - 상자 속 보물찾기 (생후 18개월~)
상자에 천 조각, 장난감, 부드러운 인형 등을 넣고 하나씩 꺼내며 이름 맞히기. 언어, 촉감, 기억력 자극이 동시에 일어나요. - 오늘은 ‘○○ 놀이 데이’ 만들기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오늘은 색깔놀이 데이!”, “오늘은 종이 찢기 데이!” 하고 하루를 작게 기획해보세요. 아이도 기대하고, 부모도 방향을 잡기 쉬워요.
저희 동네 주민센터에서는 매달 ‘우리집 놀이전문가’라는 이름의 작은 워크숍을 여는데요. 부모들이 각자 실천한 놀이를 공유하면서, 지역 전체가 하나의 놀이 도서관이 되어가고 있어요. 결국 놀이란, 누군가의 손끝에서 시작된 아주 작은 아이디어가 공동체의 자산이 되는 과정이에요.
완벽한 놀이는 없지만, 함께하는 시간은 완벽하다
처음엔 두려울 수 있어요.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막막하고, 뭔가 부족한 것 같기도 하죠. 하지만 저는 확신해요. 아이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놀이가 아니라, 함께 있어주는 그 시간 자체라는 걸요.
아이의 눈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그 눈길이 머무는 것에 조금 더 오래 시선을 주세요. 놀이란 결국, 사랑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행동이니까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이미 가장 좋은 놀이터가 되어주고 계신 거예요.